티스토리 뷰



퇴근하고 집에 오자마자 바닥에 퍼졌다. 오늘은 진짜 좀 너무했다. 일은 꼬이지, 상사는 뒤통수치지, 점심도 제대로 못 먹고, 머리는 지끈거린다. 그런 날은 진짜, 아무 생각 없이 술 한 잔 하고 싶어진다. 그냥 맥주든 소주든 뭐든 목 넘김에 정신 좀 내려놓고 싶은 그 마음. 그래서 친구한테 연락한다. "야, 나 오늘 술 한잔만 하자."

술집에 앉아 잔을 든다. 딱 한 잔만. 그런데 이상하게 그 첫 잔에서부터 알딸딸하다. 목으로 넘어간 알코올이 그대로 뇌까지 직통하는 느낌. 방금까지 나름 또렷했던 정신이 한순간에 희미해지고, 머리는 띵하고, 말수가 늘고, 감정도 벅벅 올라온다. 그러다 괜히… 말이 새어 나온다.

“아, 그때 그 전여친 말이야… 걔가 그랬잖아….”

친구가 술잔 내려놓는다. 눈빛이 이상하다. “야 그 얘기는… 됐다, 됐어.”

그제서야 정신이 퍼뜩 든다. 내가 또 했다. 피곤할 때 술 마시면 꼭 이러더라. 딱히 취하려고 마신 것도 아니고, 그냥 기분 풀려고 한 잔 했을 뿐인데 왜 꼭 그날은 술이 너무 빨리 돌고, 왜 꼭 그날은 말 실수하고, 왜 꼭 그날은 혼자 집에 와서 이불 뒤집어쓰고 후회하는 걸까.

술이 아니라, 너의 ‘피로’가 문제였다

우리는 보통 '술이 약해졌다'고 생각하지만, 사실은 술이 약해진 게 아니라 몸이 망가진 상태에서 술이 들어간 거다. 몸도 준비 안 됐고, 뇌도 정상이 아니고, 간은 이미 “나 지금 퇴근했거든요” 상태인데 그 위에 알코올을 붓는 거다.

술을 분해하는 건 간이다. 그리고 그 중심엔 CYP2E1이라는 효소가 있다. 이 효소가 제 역할을 해야 에탄올이 아세트알데히드로, 다시 그것이 물과 이산화탄소로 분해돼서 우리가 멀쩡하게 일어날 수 있는 거다.  

근데 피곤한 날엔 이 효소 자체가 제대로 작동을 안 한다. 특히 과로하거나, 잠을 못 잤거나, 스트레스를 받았거나, 그런 날엔 CYP2E1 활성도가 급감해서 술이 분해되지 않고 그대로 온몸에 퍼진다. 결국 1~2잔밖에 안 마셨는데도 뇌까지 도달하는 속도는 평소보다 훨씬 빨라지고, 감정 조절, 판단력, 언어 필터링 기능이 그대로 셧다운 돼버리는 거다.

 

술잔을 든 채 피로에 지친 얼굴로 앉아 있는 청년의 무표정한 일러스트


감정도 취한다

술이 몸만 취하게 하는 게 아니다. 진짜 무서운 건, 감정이 먼저 취한다는 것이다.  

특히 피곤한 날, 정신적으로 지치고 뭔가 하나만 건드려도 울컥하는 날에는 술이 그냥 ‘술’이 아니다. 그날의 외로움, 억울함, 허무함 같은 게 알코올에 실려서 확 터져버린다.  

그래서 전 연인 이야기가 나온다. “그때 걔가 날 어떻게 했냐면 말이야...” 친구가 민망해하고, 분위기는 싸해지고, 내가 왜 그 말을 꺼냈는지 나조차 모르게 된다.  

술 마시다 울기도 하고, 갑자기 연락 끊은 사람한테 전화도 하고, 헤어진 지 2년 지난 전 여친한테 “나 아직도 생각나” 문자 보내는 게 다 이 타이밍이다.

그리고 다음 날 아침. 휴대폰 켜자마자 식은땀 나고, 단톡방에 올라온 내 말투에 자괴감 터지고, 카카오톡 메시지 보냈던 거 보고 머리 싸매고 욕하게 된다.  

“내가 미쳤지...”

그날따라 진짜 술이 왜 이렇게 빠르게 돌았냐고?

 

친구에게 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술을 마시는 남성의 일러스트, 대화 장면 포함


정리하면 이렇다.


- CYP2E1 효소 작동안 함
- 간 해독 능력 극저하
- 알코올이 분해되기 전에 온몸에 퍼짐
- 뇌까지 직통, 감정조절 파괴
- 심장 빨리 뛰고, 탈수 상태로 알코올 흡수 촉진
- 결국 1~2잔도 ‘풀 세트 한 병’처럼 작동함

이건 네가 유난히 예민한 날도 아니고, 술이 갑자기 약해진 것도 아니다. 그냥 피곤한 상태에서 마시면 술은 항상 그렇게 된다.

최소한 이건 기억하자

안 마실 수 있다면 안 마시자. 진짜 그게 제일이다. 하지만 현실이 그렇지 못할 땐 최소한 이건 지키자.

- 공복에 마시지 말기 – 떡볶이라도 먹고 마시자  
- 물 많이 마시기 – 탈수 방지, 숙취 완화  
- 폭탄주? 미친 짓 – 피로 + 카페인 + 도수 콤보는 간접 자살  
- 전 여친 얘기 입 밖에 내지 않기 – 하고 나면 사람 하나 잃는다  
- 술자리 전에 30분만이라도 눈 붙이기 – 간 회복에 도움 된다

그리고 진짜 중요한 한 마디

피곤한 날의 술은 위로가 아니라 공격이다. 자기 자신에게 칼을 들이대고, 그걸 ‘힐링’이라고 착각하는 거다. 사실은 그 칼로 내 간을 찌르고, 내 인간관계를 찌르고, 다음 날의 나를 찌른다.

오늘 하루 너무 힘들었다면 한 잔 마시기 전에 한 번만 더 생각하자. 지금 내가 필요한 건, 술 한 잔일까 아니면 그냥 조용한 휴식일까.

이 모든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글이기에 잘 새겨들어야합니다.

공지사항
최근에 올라온 글
최근에 달린 댓글
Total
Today
Yesterday
링크
«   2026/04   »
1 2 3 4
5 6 7 8 9 10 11
12 13 14 15 16 17 18
19 20 21 22 23 24 25
26 27 28 29 30
글 보관함